드라마 <빈센조> 16화에서는 '오경자'라는 캐릭터가 주인공이다. 그는 젊을 때는 사랑하는 자식과 생이별하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평생 힘들게 살아왔으며,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을 되돌리기 위해 재심을 신청한 상태고, 지금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조차 범죄자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아들과 잠깐 숲에서 한 산책을 호강이라고 표현할 만큼, 세상에 대한 원망도 욕심도 없다. 어떻게 보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텨온 그를 닮아 빈센조가 콘실리에리까지 갔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아들임을 알고있음에도 부모에 대한 오랜 원망으로 일부러 오경자를 모른척하며 살던 빈센조는, 홍차영의 도움으로 점점 어머니와 가까워지고, 속 깊은 대화를 통해 마침내 오해를 풀고 마음을 열게 된다. 하지만 어머니라고 부르기 전에 그는 돌아가시고 만다. 죽을 때까지 후회하게 된 것이다. 어머니를 살해한 바벨에 대한 그의 분노는 사실 자기 자신을 향한 분노였을지도 모른다. 홍차영도 아버지와 싸운 후 화해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에 대한 후회로 빈센조를 도운 거였다. 홍차영과 빈센조 둘 다 결국 부모를 바벨의 손에 잃게 된다.
악당들은 왜 가족을 건드릴까? 그리고 왜 가족이 위험해지면 아무리 강한 척 하던 사람도 꼼짝 못 하게 되는 걸까. 가족은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와 연결된 나만의, 나를 위한 온전하게 안전한 세상이다. 그래서 가족이 파괴되면 온 세상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 가족 또는 가족 같이 가까운 사람이 죽는 것은, 내 세계의 일부가 죽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세상과 우리는 결코 세상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내가 죽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는 세계관은 사실 이원론적 세계관이다. 내가 죽으면 세상도 죽는다는 일원론적 세계관은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 사람이 태어나면 하나의 세계가 탄생한다. 그가 죽으면, 그로 인해 생긴 세계도 사라진다. 그리고 이 세상에 작은 균열, 즉 흔적을 남긴다. 세상은 그 죽음으로 인해 다른 세상으로 변화한다. 두 개의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하면 세상이 두 개로 갈라지며 전개된다는 다중 우주이론에 대해서는 양자역학의 원리,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론으로 들어봤을 것이다. 이에 대한 좀 더 깊은 과학적, 종교적, 철학적 탐구는 지대넓얕 0편에서 만나볼 수 있다.
안 그래도 나쁜 놈들인데 가족까지 건드리자, 빈센조는 특유의 추적 기술을 사용해 곧장 바벨을 향한다. 가족을 살해했다는 점, 아직 어머니와 화해하기 전이라는 점, 안 그래도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는 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점 등 분노할 요소가 겹겹이 쌓여있다. 어떻게 보면 뻔한 요소지만, 빈센조가 병실에 화해하러 간 바로 그 시점에 사건이 터진다. 그리고 사건은 급격하게 전개된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지만 빈센조는 결코 다른 드라마에서처럼 통곡하거나 목놓아 어머니를 부르지 않는다. 조용하게, 그리고 순식간에 범인을 찾아내 복수한다.
빈센조는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범인의 손톱을 뽑으며 고문하지만 아무도 그를 욕할 수 없다. 방금 그 손에 어머니를 잃었기 때문이다. 도덕적으로는 그러면 안 되는 일이지만, 시청자들은 통쾌해진다. 드라마 <빈센조>는 그런 작품이다. 실제로는 행할 수 없는 악당에 대한 복수를 시원하게 대신해준다. 실제로 이탈리아 콘실리에리가 대한민국에 찾아와서 부패를 척결해주는 일은 기대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드라마 <빈센조>를 통해 대리만족을 경험할 수 있다. 과연 다음 화에서 바벨의 보스와 그를 위해 일하는 변호사를 응징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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