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모어걸스
길모어걸스
이게 사랑인걸까, 10대의 사랑
솔직히 놈팽이라고 생각했다. 내 지난 <길모어걸스> 리뷰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난 위 남자애를 놈팽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드라마 상에서 이름이 나왔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근데도 저 장면만 보면 너무 설렌다. 심지어 저 장면은 스치듯이 지나간다. 두 인물의 정신없는 짧은 대화로 끝나는데도 여운이 길게 남는다. 세월이 흘러도 저런 10대들의 풋풋한 로맨스가 왜이리 설레는지 모르겠다. 앞에서가 아니라 등뒤에서 얘기해서 뭔가 더 설렌다. 남자애는 한마리 야생마같다. 타면 안될 버스에 같이 타서는 잠깐 대화를 나누고 다시 휙 내린다. 어쩜 이렇게 연출을 잘 했는지 정말 칭찬해주고 싶다. 명문사립고에 다니면 대단한 사람이고 마트에서 알바하면 별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편견을 무너뜨린다. 두 사람은 그냥 서로의 다름에 끌렸을 것이다. 원래 나와 다른 사람이 멋있어보이는 법이다.
두 사람은 5화 말미에 우연히 다시 만난다. 남자애가 밀당을 잘해서 로리가 넘어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남자애는 밀당은커녕 직진만 했다. 직진하다가 안되면 깔끔히 물러나는 타입이다. 근데 밀당보다 직진이 더 설렌다는 건 시대에 상관없이 통하는 진실인가보다. 미드 <길모어걸스>가 꽤 오래전에 나온 작품인데도 이런 컨셉이 나오는걸 보니. 사실 사람 마음을 얻는 데는 '진정성'만한 것이 없다. 연인들이 사소한 것에 화가 나고 사소한 것에 감동하는 것도 다 이 진정성 유무 때문이다. 진정성이 느껴지면 아주 작은 것에도 눈물나게 감동하지만, 진정성이 없으면 지나가는 한마디에도 속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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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랑해도 될까, 30대의 사랑
둘다 이름이 같아서 편의상 엄마는 로렐라이, 딸은 로리라고 칭하겠다. 사실 작품 내에서도 은근슬쩍 그렇게 나눈다. 엄마 로렐라이는 딸의 연애를 뭐라고 해놓고 정작 본인도 사랑에 빠진다. 심지어 성인들의 만남이라 로리보다 진전이 빠르다. 로리는 아직 본인 마음조차 잘 모르는데, 로렐라이는 남자와 사귈지 여부를 카페에서 토론한 뒤 바로 데이트 약속을 잡는다. 근데 그 남자가 로리의 학교 선생님이라는 점은 엄마가 로리의 연애를 뭐라고 할 수 없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 점잖은 학교 선생님은 말괄량이 로렐라이의 매력에 푹 빠진다. 상대방이 엥?? 하게 만드는 4차원의 매력이 있다. 그리고 로렐라이는 그의 잘생긴 얼굴에 끌린다. 학교 선생이라는 직업은 둘의 관계에 방해물이자 만남의 계기일 뿐이다. 여러 조건 따지지 않고 내 마음이 가는대로 사랑에 빠지는 방식이 참 자연스럽고 좋다. 이런 게 바로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 소개팅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자만추의 단점은, 주변 관계가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미드 <길모어걸스>에서 학부모와 선생님으로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게 된 두 사람은, 바로 그 관계 때문에 사귀어도 될지 겁을 낸다. 보통 2,30대의 연애는 이런 식이다. 일상에서 만난 지인이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면, 둘 사이에 얽힌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까봐 조심스러워진다. 대학에서는 캠퍼스 커플, 회사에서는 사내커플이 그럴 것이다. 동아리나 동호회에서 만나 사랑하게 되더라도 비슷한 걱정을 할 것이다. 작품에서도 둘 사이에 얽힌 딸 로리 때문에 둘은 만나도 될지 백분토론을 벌인다. 이런 거 저런 거 따지지 않고 사랑만 생각하며 만난다면 참 좋겠지만, 철부지 10대가 아니기에 그리고 어쩌면 생계가 달려있기에 쉽게 그 집단을 빠져나올 수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이건 답이 없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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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때보다도 달달한, 50대의 사랑
고양이를 자식처럼 키우던 이웃집 여인은, 고양이가 죽은 뒤 곁에 있어주던 남자가 떠날까봐 고민한다. 고양이 때문에 내 옆에 있었던 건 아닐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는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로 고양이를 애도했고, 밤하늘의 은하수를 바라보며 '데이트란 별거 아니구나, 밤하늘을 바라보며 말없이 서 있는 것도 로맨틱한 데이트가 될 수 있구나' 하고 알게 해주는 멋진 남자다. 그리고 고양이의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서 위 장면을 가져왔다. 무인도에서 배구공에 얼굴을 그려넣고 소통하던 로빈슨 크루소가 공이 강물에 떠내려갈때 울부짖으며 슬퍼한 것처럼, 사람은 자신과 소통하던 존재가 죽으면 그게 동물이든 무생물 돌멩이든 마음이 찢기는 고통을 느낀다. 그래서 애도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함께 슬퍼해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장례식이 존재한다.
사실 나도 오늘 장례식에 다녀왔다. 예전에는 장례식장 하면 왠지 무겁고 슬프기만 한 어둑한 장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깨달았다. 그곳도 마치 카페처럼, 살아있는 사람들이 소통하는 공간일 뿐이다. 너무 두려워하거나 불편해하면서 마음 편히 웃지도 못하거나 할 필요는 없다. 너무 과하지만 않으면 살짝 웃어도 좋고, 오히려 상주와 함께 소소하게 대화를 나누며 웃음짓는 것이 더 큰 위로가 될 것이다. 미드 <길모어걸스>에서도 장례식장은 곡소리가 메아리치고 딱딱하게 검은 옷만 입은 곳이 아니라, 다정한 축하파티처럼 아늑하고 따스한 자리로 만들어진다. 음악보다 더 좋은 추모는 없을 것이다. 죽은 사람 또는 동물을 위해 울어주는 것도 좋지만, 생전에 그 사람이 좋아하던 음악을 함께 들으며 따뜻했던 추억을 되새기는 일도 너무나 멋진 장례 방법이다. 결혼식도 그렇고 장례식도 그렇고, 좀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즐기듯이 했으면 좋겠다. 너무 격식에 맞춰 엄숙하게 하기보다는 편안하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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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에서는 다양한 세대의 사랑을 따뜻한 감성이 넘치는 느낌으로 보여준다. 내용도 좋지만 장면마다 느껴지는 색감도 참 좋다. 이때 이 감성을 그대로 훼손하지 않고 느끼고 싶다. 요즘 화질로 바꾸고 싶지 않은 그런 감성이다. 이번 화는 정말 특별히 더 추천하고 싶다. <길모어걸스> 1~4화를 보지 않고 5화만 봐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편견을 없애주는 작품이라서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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