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모어걸스
길모어걸스 9화에서 로리는 난생처음 댄스파티에 간다. 키도 크고 잘생긴 딘은 훌륭한 파트너가 되어준다. 외모의 영향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딘은 찐따 같지 않고 태도나 몸짓 하나하나에 허세도 없는데 멋있어 보인다. 뭔가 까리한 느낌이 든다. 디카프리오의 애티튜드를 떠오르게 한다. 입에 사탕 막대기인지 담배를 물고 돌리던 모습과 겹쳐 보인다. 전형적인 멋진 십 대 남자애다. 자동차보다는 오토바이가 잘 어울릴 것 같은 남학생이다. 그래서 로리 부모님도 로리를 오토바이에 태우지 말라고 경고한다. 물론 딘은 오토바이 따위 키우지 않는 의외로 순수한 남고생이다. 외모가 날라리같이 생겼을 뿐 슈퍼에서 성실하게 아르바이트하며 학교도 다니는 학생일 뿐이다. 아무튼 회를 거듭할수록 미드 길모어 걸스에서 차지하는 딘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제 딘 없이 스토리 진행이 안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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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댄스파티 그후
입고 갈 옷도 없고 남자 친구도 없어서 걱정하던 로리는, 걱정과 달리 댄스파티를 찢어버린다. 엄마는 엄청난 손재주로 멋진 드레스를 만들어주고, 남자 친구는 로리만 바라보는 멍뭉이 재질을 보여주며 자신에게 접근하는 여자애들을 재미없게 만들고, 여자 친구에게 집적대는 남자애에게 주먹을 날리기까지 한다. 한편 패리스는 늘 그렇듯이, 로리는 가만있는데 혼자 열등감이 폭발해서 거의 랩을 하듯이 화를 내다가 자기 무덤을 판다. 로리는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두 방해물인 패리스와 트리스턴을 깨끗하게 발라버리고 시원하게 파티장을 떠난다. 여기까진 정말 완벽했다. 그러나 실수로 둘은 빈 건물에 들어가 책을 읽다가 아침까지 푹 자버린다. 로리의 외박에 엄마와 할머니의 갈등이 폭발하고 만다.
내가 볼 때 둘의 갈등 원인은, 할머니가 엄마의 인생을 실패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10대 임신과 싱글맘 인생, 소박한 집, 자유분방하고 장난기 많은 성격 모든 것을 못마땅해한다. 자신의 인생의 모든 요소를 다 맘에 안 들어하는데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나마 손녀 로리를 통해 조금씩 공통점을 찾아나가나 싶었는데 다시 싸우게 된다. 당연한 일이다. 근본적인 원인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자신의 방식이 아닌 인생을 실패했다고 여기면 안 된다. 그 마음을 버리지 않는 한 영원히 딸과 화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인생은 내 손에 달려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내 인생이 엄마나 할머니 손에 달려있으면 매사에 결정권이 없어서 인생이 지루하고 답답할 수밖에 없다. 할머니는 모든 것을 다 통제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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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 어린 관심 vs. 간섭을 넘어선 통제, 그 사이 어디쯤
솔직히 이런 '엄격한 관리자' 같은 성향은, 헌신적인 전업주부에게 항상 나타나는 현상이다. 집안 살림부터 가족들의 사소한 모든 것을 자신이 돌보고 챙기다 보니, 뭐 하나 잘못되면 다 자기 탓 같고 죄책감이 든다. "엄마 왜 빨래 안 해놨어~!"라는 원망은 일상이다. 그래서 뭐든지 완벽하게 문제없이 처리하려다 보니 점점 가족들의 사소한 하나하나를 다 통제하는 습관이 생겨버린다. 아침에 자고 있는데 엄마가 깨우면 짜증을 내지만, 안 깨워서 지각해도 엄마를 원망한다. 그 이후 엄마는 가족들의 기상시간을 챙기게 된다. 이런 식으로 엄격한 어머니 상이 탄생한다.
반면 로렐라이는 로리 첫 등교날 늦잠을 자버린다. 이처럼 아무리 급박한 상황에서도 틈만 나면 여유가 생기는 사람이 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성격차이다. 그렇다고 할머니가 엄격한 관리자가 된 걸 덮어놓고 원망만 할 순 없다. 그만큼 평생 가족들을 열심히 챙기며 살아오셨다는 증거이므로, 조금은 이해해드려야 한다. 엄격한 관리자인 할머니와, 자유분방한 말괄량이 재질인 엄마가 화해하는 방법은 없을까? 상투적인 얘기지만 서로의 인생을 통제하려고 하지 말고, 각자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고 다름을 인정하는 길 뿐이다. 부모 자식 간엔 쉽지 않은 얘기다. 각자 알아서 잘살자는 식으로 자식을 키우면 자식 교육을 내팽개치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 뭐든지 중도를 지키는 게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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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에게 외박의 자유가 없는 이유
고등학생이 남자 친구와 외박을 하는 것이 잘하는 일일까? 분명 로리는 가족은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까지 다 아는, 완벽한 모범생이다. 16년간 말 잘 듣는 착한 딸이 단 하루 말을 안 들었다고 그렇게 며칠 동안 혼나고 눈치 봐야 할 일일까? 외박을 하면 가족들이 걱정하는 건 사실이다. 특히 미성년자면 더 그렇다. 게다가 연락도 없이 안 왔다. 게다가 남자와 둘이 있었다. 딘은 아무 일도 없었다며 억울해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둘이 부모님 말을 안 듣고 연락도 없이 집에 안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왜냐면 딘과 로리는 '그날 하루만 실수한 건데 왜 저러지?' 싶겠지만, 부모는 늘 미래를 보기 때문이다.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가면 앞으로 둘은 '외박해도 괜찮구나' 하면서 말도 없이 외박을 자주 할 것이고, 그러다가 일을 치르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고, 그렇게 되면 미리 단속하지 못한 부모님이 욕을 먹기 때문이다.
미성년자는 경제적으로 자립할 힘이 없다. 그래서 미성년자의 결혼과 출산은 부모의 지원 없이는 쉽지 않다. 연애는 자유지만, 결혼과 출산은 법적으로 내 가족이 생기는 엄청난 일이다. 가족 중 최소 한 사람은 돈벌이를 해야 가정을 책임질 수 있다. 부모님 댁에 의거할 수도 있지만, 집안에 한 명 더 살아도 숟가락만 더 놓으면 된다는 건 예의상 하는 소리다. 사실상 식구가 한 명만 늘어도 그에 따른 부양비용과 집안일이 엄청 늘어난다. 경제적 독립 없이 새 가족을 만들어 부모에게 의탁하는 것은 정말 부모님께 큰 짐을 지우는 행위다. 그래서 부모는 항상 자식의 현재만이 아닌 미래까지 걱정하고 애태운다. 냉정하게 말하면 자식이 잘못되면 그 책임을 부모가 지게 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라고 외치는 것이고, 자녀의 연애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이다. 당장은 공부 안 하고 연애하는 게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미래에는 그게 문제가 될 수 있다. 공부를 안 하면 추후 성인이 됐을 때 경제적으로 독립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진다. 물론 확실하게 공부 외에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상관없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런 능력이 없다.
로렐라이는 로리 나이 때 출산을 했다. 그러나 딸이 자신처럼 힘든 10대를 보내길 바라진 않는다. 할머니도 놀란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속담이 있다. 딸의 준비되지 않은 임신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던 경험이 있기에, 손녀의 외박에도 마치 벌써 임신한 것처럼 펄쩍 뛰며 화를 낸다. 이런 어른들의 마음을 로리와 딘은 이해할 수 없다.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기에 당연한 일이다.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는데, 소위 '손만 잡고' 잤는데 어른들이 왜 이렇게 화를 내시는지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만약 딘과 로리 둘 다 성인이고,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경제적 독립을 한 상태였다면 이렇게까지 혼나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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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댄스파티 편에서는 로리와 딘의 로맨틱한 모습들이 선물처럼 한 보따리 나온다. 둘이 차를 타고 댄스 파티장으로 향하는 장면, 딘이 로리를 뒤에서 껴안고 다른 여자애들을 쳐내는 장면, 트리스턴과 딘이 로리를 두고 격하게 싸우다가 주먹까지 날리는 장면, 소파에서 같이 책을 읽다가 안고 잠든 딘과 로리의 모습 등 하이틴 로맨스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나도 그런 부분은 설레면서 기분 좋게 봤지만, 무시할 수 없는 갈등 요소를 집중적으로 다뤄봤다. 앞으로 어떻게 해소가 될지 지켜봐야겠다. 길모어걸스 완전 꿀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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